[감성탐구생활]시절인연 — 존재의 중력 속에서
| 2025-11-13 05: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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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사색을 많이 하게 된다.
나의 삶의 흐름을 한마디로 말하면 ‘시절인연(時節因緣)’ 같다.
불교에서 온 말이지만, 내게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다.
관계는 형식보다 마음의 자리가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별이든 만남이든,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탓하지 않으며, 관계의 끝에서도 자비로워야 한다.”
『논어』의 구절과 닮은 말이지만,
불교의 시절인연과도 연결되는 생각이다.
나는 이별을 하더라도 싸우고 싶지 않다.
상처 덜 받는 이별,
그 안에서도 품격을 지키는 이별을 만들고 싶다.
“헤어짐에도 예(禮)가 있다.
미움을 품지 말고, 인(仁)으로 떠나라.
그러면 떠나는 자도 고요하고, 남는 자도 평온하다.”
시절인연은 어쩌면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같다.
빛도, 말도, 감정도 한 번 빨려들면
다시는 예전의 형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그곳.
그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무너지고,
그저 인연의 중력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한 번 들어서면 되돌릴 수 없는 갈래길 같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이런 인연을 ‘업(業)’의 흐름이라 말하지만,
지금의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시절인연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지 않기를,
그저 한 번의 깊은 흐름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이 글은 인연의 시작도, 끝도 아닌
그 사이(間) 에서 쓴 기록이다.
나는 지금 그 사이를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