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불암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계기로,
'존재의 소멸'이라는 명제를 두고 살찐용과 AI 쏘피가 함께 토론하며 완성한 에세이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 _)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영혼들에게
2026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침에 대부님께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배우 최불암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었다.
한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TV를 켜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그분의 목소리와 표정은 수많은 기록 속에 남아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사람의 존재는 언제 완전히 소멸하는 걸까?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육체는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육체의 죽음이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긴 모든 것의 끝일까?
최불암 선생님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분의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분의 삶에서 무언가를 배운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누군가의 따뜻한 행동을 보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의 책임감 있는 삶을 보고 나 역시 내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그것을 '존재의 에너지'라고 부르고 싶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
그렇다면 최불암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은 또 하나의 최불암이 되는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최불암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까 존재의 에너지는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자기만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돕는 원동력에 가깝다.
한 사람의 삶에서 출발한 영향이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
그렇다면 육체는 죽더라도,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긴 정신은 계속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스피릿(Spirit)**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을지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기억된다.
그 사람이 남긴 말과 행동은 기록되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없고,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해 주는 이조차 없는 영혼들.
누군가에게 영향을 남길 기회조차 충분히 갖지 못했던 사람들.
그들은 존재의 에너지를 남기지 못했으니, 완전히 소멸한 것일까?
아니다.
여기서 나는 앞서 생각했던 존재의 에너지와 존재의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느꼈다.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남겼는가와 한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삶의 가치는 타인의 기억이나 평가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그러다 위령미사가 떠올랐다.
가톨릭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그 기도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영혼들도 포함될 수 있다.
세상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하지만 신앙 안에서 그들은 하느님께 잊힌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위령미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사랑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한 배우의 별세 소식에서 시작한 생각은 결국 존재의 소멸에 대한 질문을 지나, 이름 모를 영혼들을 향한 기도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 존재가 언제 완전히 소멸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하게 되었다.
존재가 남긴 영향이 사라지는 것과, 그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그리고 오늘은 이 기도로 글을 마치고 싶다.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돌보시고,
그중 제일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