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PLANET

[신앙탐구생활]연중 제22주일 복음 – “사탄아, 물러가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붙잡는 마음에 대하여

2026.08.30 13:48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은 쉽게 읽으면

‘참아라, 견뎌라, 자신을 희생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정말 그런 뜻일까.


만약 그렇게만 받아들인다면 신앙은 자칫

자기 존재를 지워가는 연습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

“참아야 신앙이다.”

“부당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이 클수록 하느님의 뜻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버리라고 하신 것은

존재 자체라기보다, 자기 안전과 자기 이익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사랑일까.

욕심일까.

아니면 지금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일까.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변해서 내가 알던 관계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습니다.”


이 마음은 분명 사랑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대가 가야 할 길보다

‘우리 관계가 지금 모습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말씀이 유난히 거칠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베드로라는 사람 자체를 악하다고 꾸짖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길을 막으려는 유혹을 잘라내신 것은 아닐까.

사랑은 어쩌면

“나와 있어 줘”라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네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네가 네 길을 자유롭게 선택했으면 좋겠다.”

라는 것까지 감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곁에 붙잡아 두는 것보다,

그 사람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보내주는 일이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 하나도 이렇게 어렵고,

놓아주는 것과 붙잡는 것 사이에서 인간은 늘 흔들리는데,

세상의 모든 감정과 사연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오늘은 딱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길까지 대신 정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묵상은

정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의 무언가가 조금 움직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목록으로